LOKOYO 원래 이야기

불은 이미 켜져 있었다

아카데미편 한 권 초안 · 1–14장과 네 결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출간 전 검토본입니다.

렌은 세라가 내려놓은 작은 촛대를 보았다. 불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실습실의 창문은 동쪽을 향해 있었다. 세 사람씩 앉는 탁자마다 유리 접시가 세 개씩 놓여 있었고, 접시마다 엄지손톱만 한 밀랍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렌은 자기 접시를 앞으로 조금 밀었다. 교수가 교탁에서 고개를 들면 가장 먼저 보일 위치였다. 오른손의 붕대가 접시 가장자리에 걸리지 않게 손목을 들었다. 전날 긁힌 손바닥은 힘을 주지 않으면 거의 아프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 탁자 뒤에 섰다. 앉아 있으면 기다리는 학생 같았고, 서 있으면 준비를 마친 사람 같았다. 옆 탁자의 학생이 그에게 출석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렌은 벽을 가리켜 준 뒤 앉았다. 벨 교수는 잠시 뒤 들어왔다. 한 손에 출석부, 다른 손에 뚜껑이 열린 차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세라 조교가 주전자 밑에 받침을 넣었다. “오늘은 점화와 유지다. 불을 크게 낼 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소화통 옆으로 자리를 옮겨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옮겨 주는 것보다 지금 옮기는 편이 낫다.” 뒤쪽에서 의자 하나가 바닥을 긁었다. 벨은 그 학생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출석을 불렀다. 렌의 이름 앞에서는 아주 잠깐 손가락이 멎었다. 렌은 그 멎는 시간을 정확히 보았다. 정규 명단 아래 추가된 줄을 찾는 것일 수 있었다.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그는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준비됐습니다.” 벨은 다음 이름을 불렀다. 세라는 탁자를 돌며 밀랍 옆에 구리 고리를 놓았다. 고리는 주문이 빠져나가는 범위를 확인하는 실습 도구였다. 점화에 필요한 마나를 주는 물건은 아니었다. 처음 접시를 받은 학생 하나가 고리를 누르고 기다리자 세라가 손가락을 접시에서 떼어 주었다. “문고리를 잡았다고 방 안에 들어간 건 아니죠. 시작은 본인이 해야 해요.” 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날 기숙사 문 앞에서 배운 비유치고는 되도록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종류였다. 벨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교탁 위의 밀랍을 가리켰다. 푸른빛이 잠깐 손끝에 모였다가 사라졌고 심지에 불이 붙었다. 불꽃은 작았다. 강당에서 입학 안내를 하던 등이 훨씬 밝았다. “유입. 유지. 해제.” 교수가 손을 내리자 불이 꺼졌다. 이번에는 심지가 까맣게 남지 않았다. “마나로 만든 점화핵만 유지했다. 아직 연료에 옮기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밀랍을 태워 버린 사람은 불을 잘 낸 것이 아니라 두 번째 단계를 건너뛴 거다.” 학생들이 필기를 시작했다. 렌도 적었다. 유지라는 글자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1클래스는 작은 마법이란 뜻이 아니다. 네가 시작한 일을 네가 끝낼 수 있다는 첫 번째 증명이다. 2클래스 파이어볼은 여기서 열을 더 많이 넣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목표까지의 경로와 끝나는 지점이 추가된다. 점화핵을 못 끄는 사람이 공부터 던지면 누군가가 창문을 새로 사야 한다.” 벨은 뒤쪽 창문을 보았다. 오른쪽 아래 유리만 약간 더 맑았다. 교실의 절반이 그쪽을 돌아보는 동안 렌은 계속 밑줄을 긋다가 종이를 조금 찢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대목은 마법을 못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해 본 적도 없는 수업에 앉아 있다가, 자기 차례에만 수업의 종류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앞사람에게는 손목의 각도를 말하던 교수가 그에게는 관찰도 중요한 참여라고 할 것이다. 친절한 말을 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이 접시를 내려다볼 것이다. 렌은 그런 시간을 견딜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두었다. 그중 절반은 아직 말하지 않았으므로 꽤 괜찮아 보였다. 탁자를 정리하는 동안 렌은 같은 조끼리는 이름으로 부르자고 했다. 토마가 그래도 되느냐고 되물어, 렌은 말도 놓자고 덧붙였다. 나머지 둘의 대답을 듣기 전에 자기가 만든 호칭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잠깐 기다리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개인 실습은 조와 별개로 두 사람씩 기록을 재 주기로 했다. 세 명인 조에서 남은 한 사람끼리 짝을 정했다. 토마는 뒤쪽 탁자에서 구리 고리의 이음매를 살피고 있었다. 그와 짝이 된 학생은 이미 작은 불을 켰다. 토마는 서둘러 손을 놓고 자기 접시 앞에 앉았다. 손끝에 빛이 모였지만 심지 위에서 가늘게 퍼졌다. 그는 눈을 찡그린 채 숨을 참았다. “숨은 마나가 아니야.” 세라가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토마가 숨을 내쉬었다. 불꽃이 켜졌다. 그 자신이 가장 놀란 얼굴이었다. 순서대로 실습이 시작되자 실내는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불이 켜질 때마다 큰 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던 학생들까지 자기 숨과 펜 소리만 듣게 되었다. 누군가의 점화핵이 오래 버티면 다른 탁자에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칭찬을 받기 전에 더 오래 버텨 보려는 학생들의 턱이 굳었다. 렌은 접시 위로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을 벨과 같은 간격으로 벌리고, 이미 외운 주문의 세 음절을 정확하게 발음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다음이 어려웠다. 실패한 손을 언제 거두어야 할지 참고할 만한 절차가 없었다. 그는 손을 조금 더 들고 있었다. 끝난 행동도 오래 유지하면 아직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렌.” 벨이 불렀다. 렌은 곧바로 손을 내리지 않았다. “마나 반응은 그대로 없군. 주문의 순서는?” “유입, 유지, 해제입니다.” “각각 실패했을 때 무엇을 확인하지?” 렌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교재에서 가장 열심히 읽은 부분이었다. 마나 유입이 없으면 핵이 형성되지 않고, 유지가 불안정하면 범위를 줄여야 하며, 해제 뒤에는 잔류 여부를 고리에서 확인한다. 벨은 틀린 내용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대로 기록해라.” 교수는 옆자리로 갔다. 렌은 손을 내렸다. 시험보다 나쁜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서는 적어도 결과를 설명할 시간이 있었다. 뒤쪽에서 작은 박수가 났다. 토마의 짝이 십 호흡 동안 점화핵을 유지한 모양이었다. 토마도 두 번 손뼉을 쳤다가 자기 불꽃이 꺼지는 바람에 급히 접시로 돌아갔다. 렌은 그쪽을 보다가 앞자리의 불꽃과 자기 손이 한 줄로 겹치는 것을 알아차렸다. 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렌은 손바닥을 조금 비스듬히 세웠다. 그 순간에만 보면 손끝 아래로 불이 떠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 이 각도에서 보시면—” 세라가 접시 하나를 옆으로 옮겼다. 불꽃도 함께 옮겨 갔다. 렌의 손 아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무도 크게 웃지 않았다. 그 점이 더 오래 남았다. “시야 확인했습니다.” 렌이 말했다. 세라는 접시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제 불은 제가 기록할게요.” 앞자리 학생이 말했다. “물론이지.” 렌은 손을 무릎으로 내렸다. 옆자리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자기 필기장을 보았다. 유입, 유지, 해제 아래에 공간이 넓게 비어 있었다. 거기다 방금 일을 적고 싶지는 않았다. 휴식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창문 쪽으로 몰렸다. 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소매 끝이 물통에 걸렸다. 물통이 기울기 전에 잡았다. 안의 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물통을 탁자 가운데로 밀고, 구리 고리 옆에 놓인 출석용 종이 뭉치를 한 장씩 포갰다. 세라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건 교탁에 놓아 주겠어요?” “제가 교실 정리를 맡은 건 아닙니다.” “알아요. 불 가까이에 있어서 옮긴 거죠?” 렌은 대답할 말을 고르다가 종이를 가져갔다. 좋은 판단을 해 놓고도 설명 때문에 일이 나빠지는 날이었다. 복도 끝에서 에드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렌이 컵을 찾자 말없이 빈 컵 하나를 건넸다. 다른 학생들이 실습 기록을 비교하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조건부라는 게 정확히 뭐야?” 에드가 물었다. 렌은 물을 따랐다. 컵이 가득 찼는데도 잠깐 더 기울였다가 손등을 적셨다. “한 학기 동안 실습 수업에 참여하고 평가를 받는 거야.” “마나 수치 조건을 나중에 채우는 건가?” “아니. 마나 없는 건 처음부터 적혀 있어.” 에드는 컵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럼 정규 승급 시험은?” “지금 서류로는 응시 못 해.” 렌은 덧붙이고 싶은 말을 여러 개 삼켰다. 학원 전례가 없다는 말, 교수회가 지켜본다는 말,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아직 누구도 약속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 온 거네.” “여기 말고 어디에서 바꾸겠어.” 에드는 렌을 보았다. 그 말만큼은 이해한 표정이었다. 렌은 그가 호의를 보일 때 빨리 다른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알아차렸다. “우리 집에서는 네 얘기를 해.” 에드가 말했다. 렌이 컵을 내려놓았다. “좋게?” “아버지는 실습생을 입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셨어.” 렌은 컵을 다시 들었다. “나는 네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몰랐어. 이제는 알아.” 에드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렌도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누군가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마나로 띄운 물줄기가 바람을 만나 거의 전부 자기 신발에 떨어졌다. 두 사람은 그 학생이 주변을 확인하는 동안 같이 창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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