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편 한 권 초안 · 1–14장과 네 결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출간 전 검토본입니다.
“네가 먼저 말해.” 렌이 말했다.
토마가 상자를 멈췄다.
“시작도?”
“시작도. 나는 시간을 보고 장치 방향을 바꿀게. 질문을 내가 대신 받지는 않을 거야.”
렌은 자기 대본을 가운데 접었다. 첫 장에 적힌 인사말이 반으로 가려졌다. 토마에게 종이를 주려다가 내려놓았다. 그가 말하려던 건 렌의 문장을 읽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라가 문 안에서 손짓했다. 렌은 한 발 뒤로 물러나 토마가 먼저 들어가게 했다. 토마는 단상 가운데까지 갔다가 장치를 놓을 탁자를 지나친 것을 알고 돌아왔다. 뒤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렌은 웃은 학생을 찾으려다 시계를 보았다.
“저희가 만든 건—”
토마는 멈췄다. 깃을 보았다. 그가 왜 우리라고 했는지 렌은 알 수 있었지만 고쳐 주지 않았다.
“제가 설계하고 조립한 점화 고리 진동 표시 받침입니다.”
벨이 고개를 들었다. 토마는 장치의 발을 하나씩 가리켰다. 어느 발을 먼저 말할지 잠시 헷갈렸지만 흰 깃을 움직이는 부분에 손이 닿자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는 어제 부러진 다리도 숨기지 않았다.
“여기는 렌이 옮기다 구부러졌습니다.”
몇 사람이 렌을 보았다. 렌은 자세를 바로 했다.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붙이지 않았다.
“새 판으로 바꾸고 더 두껍게 만들었는데, 그러면 늦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지지하는 발과 표시하는 판을 같은 기준으로 튼튼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토마는 두 조각을 나란히 들었다. 뒤쪽에서는 작은 판이 보이지 않았다. 렌은 허락을 구하는 눈짓을 하고 장치 밑의 받침판을 들었다. 학생들이 잘 보이는 높이에서 흔들리지 않게 유지했다. 토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이었다.
시전자가 점화핵을 만들었다. 토마가 준비한 첫 신호를 놓쳤다. 렌은 시간을 재기 전에 토마를 보았다. 토마는 숨을 들이쉬고 다시 말했다.
“이제 유지해 주세요.”
깃이 떨렸다. 시전자가 유입을 줄이자 움직임이 작아졌다. 렌은 손목이 굳기 전에 받침판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단단히 붙잡는 손이 장치의 진동까지 눌러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전날 배웠다.
벨은 일부러 짧게 흔들리는 점화핵을 만들어 보이라고 했다. 토마는 뒤쪽 조절 나사를 반 바퀴 풀었다. 흰 깃이 넓게 떨렸다. 뒤쪽 학생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질문은 두 개였다. 첫 번째는 다른 고리에도 맞느냐는 것이었다. 토마는 지금은 이 규격만 맞고 다른 것은 따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누가 손으로 탁자를 치면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토마의 입이 잠깐 다물어졌다.
“그때는 구분 못 합니다. 탁자도 같이 흔들리니까.”
렌은 그런 한계를 말하면 점수가 내려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벨은 오히려 기록에 한 줄을 더 썼다.
발표 시간은 예정에서 조금 넘었다. 세라가 작은 종을 울렸다. 토마는 마지막 문장을 서두르다가 제작 기록의 장수를 잘못 말했다. 렌이 손가락 네 개를 들어 보였다. 토마는 네 장이라고 고치고 인사했다.
박수는 크지 않았지만 길었다. 토마는 장치를 챙기려다 아직 인사를 안 한 렌과 시전자를 보고 다시 앞을 향했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순간에 고개를 숙였다.
평가표에는 장치 원리와 한계 설명 우수, 시간 운용 보완이라고 적혔다. 렌의 진행 칸은 계획 변경 대응으로 기록됐다. 정식 발표 설명자 칸에는 토마의 이름이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토마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상자를 두 번 열었다 닫았다. 렌이 물을 건넸다. 그는 컵을 받으며 말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답 못 할 뻔했어.”
“대답했잖아.”
“못 한다고 했는데.”
렌은 평가표를 펼쳐 한계 설명에 쳐진 동그라미를 보여 주었다. 토마가 그것을 한참 보았다. 렌은 자기 대본을 가방에 넣었다. 종이 두 장 반은 아직 깨끗했다. 다음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다음에도 자기가 설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