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편 한 권 초안 · 1–14장과 네 결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출간 전 검토본입니다.
니아의 장학 평가 결과는 화요일 점심에 게시됐다.
렌은 결과를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다. 학생회 게시판 옆에 놓인 긴 의자를 빌리러 갔다. 기숙사 방에 손님이 오면 침대에 앉히는 것보다 의자가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올 예정은 없었다. 그 문제는 의자를 확보한 다음에 해결할 수 있었다.
긴 의자에는 학생 셋이 앉아 결과표를 읽고 있었다. 렌은 그들에게 잠깐 일어나 달라고 말하려다가 표 맨 위에서 니아의 이름을 보았다. 장학 유지. 실기 재평가 완료. 서류 확인란까지 모두 채워져 있었다.
렌은 줄 끝에 손가락을 댔다가 종이에 자국을 남길까 봐 뗐다. 자신이 발표한 것도 아닌데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종이를 보고 있었다.
니아는 게시판에서 조금 떨어진 창가에 있었다. 결과를 다시 확인하려는 사람에게 가려지지 않게 비켜선 자리였다. 손에는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렌이 다가가자 그녀는 봉투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봤어.” 렌이 말했다.
“응.”
“축하해.”
니아는 웃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할 만큼 피곤한 얼굴이었는데 웃자 나이가 조금 달라 보였다. 렌은 그 표정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결과표를 한 번 더 보았다. 거기에 자기 이름은 없었다.
“이제 오늘은 안 해도 되겠네.”
“오늘은 정말 안 할 거야.” 니아가 말했다. “밥 먹고 씻고 잘 거야.”
“좋지. 그런 날이 있어야지.”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축하회를 하면 더 좋은 날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니아가 계단을 내려간 다음에 떠올랐으므로,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무시하는 거라고는 느끼지 않았다.
그는 식당으로 가면서 축하회 순서를 정했다. 큰 행사는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끼리 잠깐 모여 축하만 하는 자리. 말할 기회를 고르게 나누고, 당사자의 노력을 돌아보고, 마지막에는 앞으로도 서로 돕자는 짧은 약속을 하면 됐다. 길어도 한 시간이었다. 그는 시작 시간 앞에 ‘자유 참석’이라고 적었다. 그러면 부담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점심 식탁에서 토마가 접시를 놓자 렌은 종이를 돌렸다.
“오늘 저녁에 방에서 조금 모일까 해.”
토마는 빵을 씹고 있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니아 장학 평가 통과했어.”
토마가 빵을 삼켰다.
“다행이다. 며칠째 도서관에 있더니.”
렌은 종이에 첫 번째 참석자 표시를 했다. 토마는 그걸 보지 못했다. 그는 자기 공책의 부품 목록에 무엇인가를 더 쓰고 있었다.
“장치는 다 정리했어?” 렌이 물었다.
“공구 반납만 남았어. 표찰도.”
“오늘 사람들 오기 전에 책상 조금만 비워 줘.”
토마가 고개를 들었다.
“몇 명?”
“우리 방에 들어올 만큼.”
토마는 잠깐 방의 크기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침대엔 앉히지 마.”
“의자를 빌릴 거야.”
렌은 중요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져온 식당의 빵은 아직 손대지 않은 채였다.
에드는 실습동 계단에서 만났다. 다음 주 과제용 천과 작은 추를 들고 있었다. 렌이 축하회를 말하자 그는 곧바로 못 간다고 했다. 저녁에 개인 연습실을 예약했고 취소하면 다음 빈 시간이 사흘 뒤라고 했다.
“잠깐만 들르면 되는데.”
“잠깐 가려면 연습을 중간에 끝내야 해.”
“축하의 뜻만 전해도 돼.”
“니아한테 이미 축하한다고 했어.”
렌은 계단 손잡이를 쥐었다. 에드는 자신의 말이 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렌에게 필요한 것은 축하의 뜻이 아니라 참석자였다. 그 두 가지를 구별하자 할 말이 없어졌다.
에드가 천을 다른 팔로 옮겼다.
“잔은 있어?”
“많이 필요하진 않아.”
“내 방에 손님용 잔 있어. 빌려줄게.”
렌은 가지 않으면서 잔을 빌려주는 사람의 마음을 잠깐 이해하지 못했다. 에드는 렌이 동의한 것으로 알고 기숙사 쪽으로 걸었다. 렌도 따라갔다.
에드의 방에 있는 잔은 얇고 맑았다. 금속 장식도 가문 문장도 없었다. 햇빛에 비추면 가장자리만 은색으로 보였다. 에드는 여섯 개를 꺼내 천 사이에 끼워 주었다.
“뜨거운 물 바로 붓지 말고. 차는 찻잔에 담고 이건 찬물이나 과일물에 써.”
렌은 여섯 개라는 숫자를 보고 다시 참석자 수를 셌다.
“네 잔도 남겨 놓을게.”
“나는 안 가.”
에드는 잔을 상자에 넣는 손을 멈추고 렌을 봤다. 렌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빌려줘서 고마워.”
“내일 돌려줘. 선반에 다시 놓을 때 내가 할게.”
렌은 상자를 가슴 높이에서 조심스럽게 들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조심해야 하는 물건이라 그렇게 들었다. 에드는 문을 열어 주고 연습용 추를 챙겼다.
축하회 준비는 실제 참석자를 모으는 것보다 쉬웠다. 빈 방에 사람의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렌은 빌린 의자 네 개를 침대 두 개 사이에 놓았다. 남은 두 사람은 책상 의자에 앉으면 됐다. 문을 열면 맨 끝 의자에 부딪쳤다. 그는 의자를 비스듬히 돌렸다. 이번에는 앉는 사람의 무릎이 장롱을 막았다. 장롱을 먼저 열어 둘 생각도 했지만 안에 걸린 빨래가 행사에 맞지 않았다.
결국 네 개 중 두 개를 돌려주었다. 빈자리까지 계획대로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먹을 것은 식당에서 남은 빵을 조금 사 왔다. 장학 평가를 통과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비싼 음식을 내면 앞으로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렌의 남은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것도 그 정도였다. 식당 직원이 곁들일 것을 물어보자 그는 축하용이라고 답했다.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작은 통에 사과 조림을 담아 주었다.
“이건 오늘 다 먹어. 내일 두면 물 생겨.”
렌은 감사 인사를 한 뒤 뚜껑 위에 이름을 적으려다 멈췄다. 축하회 음식에 자기 이름을 쓰는 건 이상했다. 그는 ‘오늘’이라고만 썼다.
모임 안내는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었다. 니아의 이름은 가운데 크게 넣었다. 결과를 축하한다는 말을 세 줄로 쓰고, 아래에는 주최라는 단어를 적었다. 자기 이름까지 쓰자 위아래 글자의 크기가 같았다. 그는 니아의 이름을 조금 더 크게 고쳤다.
안내문은 세 장만 만들었다. 한 장은 자기 방문 안쪽, 한 장은 기숙사 공용 탁자, 한 장은 니아에게 줄 생각이었다. 공용 탁자에 놓자 지나가던 학생이 물었다.
“니아가 여는 거야?”
“아니. 우리가.”
“누가 가는데?”
렌은 아직 대답할 이름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아는 사람들.”
그 학생은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했다. 렌은 참석자 표시를 하나 더 하려다가 시간 되면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빈 동그라미만 그렸다.
니아는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책을 반납하러 온 길이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얇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렌은 그 차이가 준비를 끝낸 사람의 가벼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내문을 내밀었다.
“큰 건 아니야.”
니아는 종이를 읽었다.
끝까지 읽은 다음 다시 처음을 보았다. 렌은 설명을 준비했다. 음식이 소박하다는 것, 오래 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도 정식으로 참석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니아는 그중 어느 것도 묻지 않았다.
“나 오늘 쉰다고 했잖아.”
“알아. 공부하는 모임은 아니고—”
“사람들이 축하하러 오면 나는 계속 고맙다고 해야 돼.”
렌은 입을 다물었다.
니아는 종이 아래의 시간을 가리켰다.
“이 시간엔 방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있고 싶어. 안 갈게.”
그녀는 종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접어서 렌에게 건넸다. 펼친 채 주면 옆 사람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렌은 그 작은 배려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다 준비한 거야?”
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면 니아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다. 렌은 이미 떠올린 말을 입안에 잠깐 두었다가 삼켰다.
“취소하면 돼.”
“응. 취소해 줘.”
니아는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렌은 그것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뜻인지 생각하다가, 방금 니아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원하는지 들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도서관 문이 닫히고 나서도 그는 잠시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종이를 펼쳐 보지는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종이가 접힌 자국만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