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편 한 권 초안 · 1–14장과 네 결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출간 전 검토본입니다.
금속틀에는 굵은 손잡이와 세 개의 움직이는 핀이 달려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바닥판에는 교육용, 실제 설비와 분리라고 적혀 있었다. 렌은 가까이 가기 전에 그 글자를 읽었다.
오르가 손으로 첫 번째 핀을 밀어 올렸다. 손잡이 안쪽에서 짧은 쇳소리가 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핀도 올리자 손잡이는 더 단단하게 잠겼다.
“유리탑 수동 비상 해제 장치의 모형이야. 실제 마나는 안 들어가. 여기선 이 핀들이 공급 상태를 대신 보여 줘.”
렌이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자 오르는 아직 잡지 말라고 했다.
“비상 손잡이면 그냥 당기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무 상태에서나 당겨도 된다는 뜻이면 이런 잠금이 필요 없지.”
오르는 바닥판에 세 갈래 선을 그었다. 세 공급 구역이 모형 환경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원래 결계는 오래된 설계야. 설계 때 6클래스 기술이 들어갔다고, 손잡이를 6클래스 힘으로 돌리라는 뜻은 아니고. 공급을 먼저 끊고 잔류를 확인한 다음 기계 잠금을 해제하게 해 둔 거야.”
“셋 다요?”
“연결된 셋 다. 쓰지 않는 구역도 실제로 끊겨 있는지 확인해야 해. 한쪽을 안 쓴다는 표시만 믿으면 안 돼.”
렌은 B에 사용 안 함이라는 덮개가 씌워져 있던 것을 떠올렸다.
오르는 첫 번째 핀을 내렸다. 손잡이가 조금 움직였다가 멎었다.
“하나.”
두 번째를 내렸다. 손잡이가 조금 더 움직였지만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둘.”
세 번째를 내리자 안쪽 걸쇠가 풀렸다. 오르는 곧바로 손잡이를 돌리지 않았다. 모형 옆에 작은 유리창을 가리켰다. 안에는 잔류 확인이라고 쓴 판이 들어 있었다.
“실물에선 공급을 끊어도 남은 마나가 빠질 시간이 있어. 시전할 수 있는 담당자가 확인하고, 해제 지시를 내. 그다음에 여기.”
오르가 손잡이를 돌렸다. 좁은 문틀이 천천히 열렸다. 힘은 거의 필요 없어 보였다.
렌은 그 쉬운 움직임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줄 기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잠겨 있을 때 제가 돌리면요?”
오르는 렌을 봤다.
“돌아가겠지. 축이나 걸쇠가 부러질 테니까.”
렌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손잡이를 봤다.
“그럼 열리긴—”
“문 일부는 열릴 수 있어. 공급은 남아. 닫힌 구역을 가두던 구조가 먼저 깨지면 남은 마나가 옆 구역으로 몰려. 사람이 나갈 구멍을 내다가 다른 출구 앞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어.”
오르는 세 갈래 선 가운데 한 줄을 손으로 가렸다. 나머지 두 줄이 그대로 남았다.
“네가 할 수 있다고 먼저 할 일은 아니야.”
렌은 입을 다물었다. 아주 익숙한 힘을 모르는 물건에 쓰면 무엇이 되는지 처음 듣는 설명은 아니었다. 받침의 다리도 알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는 다시 깎아 끼울 다리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차단이 먼저. 남은 마나 확인. 손잡이는 그다음.”
그가 말했다.
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끊는 건 내가 못 해요.”
“그래. 주문 해제나 승인된 차단을 할 수 있는 담당자가 해야 해. 네가 할 일은 그 사람이 일할 수 있게 자리를 지키는 거일 수 있고.”
그 말은 렌을 덜 중요한 자리로 미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르는 렌의 일을 먼저 정해 칭찬하지도 않았다. 실제 상황에 따라 정해질 뿐이었다.
렌은 모형 앞에서 순서를 다시 해 보았다. 오르가 핀을 모두 올리면 렌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 공급 상태를 먼저 말해야 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그는 핀이 내려가자 바로 손잡이를 만졌다. 오르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렌은 손을 거두고 잔류 확인을 기다렸다.
두 번째는 제대로 했다. 세 번째에는 오르가 핀 하나를 반쯤만 내렸다. 렌은 돌아가지 않는 손잡이를 시험하지 않고 멈췄다.
“이건 아직 확인 안 됐어요.”
오르는 반쯤 남긴 핀을 완전히 내렸다.
“그래.”
그것이 시험의 합격 통보 같아서 렌은 자세를 조금 폈다. 오르는 점수를 쓰지 않았다.
다음에는 금속틀의 위쪽을 잡았다. 모형의 문이 열린 상태에서 아래 받침 하나를 빼면 틀이 기울었다. 오르는 바닥의 안전 받침을 가까이 밀어 놓고, 렌에게 틀을 정해진 높이에서 유지해 보라고 했다. 손가락은 이음매 안에 넣지 못하게 했다.
렌은 쉽게 들어 올렸다.
“이 정도는—”
“높이 그대로.”
오르는 아래의 좁은 틈에 나무 쐐기를 넣었다. 렌이 조금만 더 들면 쐐기가 빠졌고, 조금만 내려놓으면 오르의 도구가 물렸다. 힘껏 잡고 가만히 있는 것과 무게를 유지하는 것은 달랐다. 렌은 팔보다 손끝을 조심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엄지와 검지 사이가 당겼다. 그는 손을 바꾸려다가 틀이 비틀리는 것을 느꼈다.
“바꿔도 돼요?”
오르가 쐐기를 확인했다.
“지금은 기다려. 받침 하나 더 넣고.”
렌은 기다렸다. 등에서 땀이 났다. 틀이 아주 무거워서가 아니라 힘을 풀 수 없는 자세였기 때문이다. 오른손의 오래된 긁힌 자리는 이미 아물고 있었지만, 그 옆의 손바닥까지 저릿해졌다. 렌은 손잡이를 더 세게 쥐고 싶은 것을 참았다. 얇은 틀이 휘면 손을 옮길 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오르가 두 번째 받침을 넣었다.
“이제 내려놔.”
렌은 천천히 무게를 옮겼다. 금속틀이 받침 위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는 손을 놓고 손가락을 폈다. 네 번째 손가락이 곧바로 펴지지 않았다. 반대 손으로 문지르자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오르는 모래시계를 봤다.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하고 계속 붙들 수 있는 시간은 다르지.”
렌은 대답 대신 손바닥을 한 번 더 폈다.
“다음엔 더 오래 할 수 있어요.”
“그걸 지금 증명할 필요는 없어. 저리기 시작한 때를 말해 주면 돼.”
렌은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생각했다. 도구를 바꾸러 오르가 돌아섰을 때였다. 그는 정확히 말해 주었다. 오르는 그 시간을 작업표에 적지 않았다. 렌에게 기억하라고 했다.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몸의 신호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토마가 돌아왔을 때 렌은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세라의 서명이 들어간 종이를 오르에게 건네고 나서 토마는 교육용 틀을 보았다.
“해 본 거야?”
“응.”
“손 괜찮아?”
렌은 곧바로 괜찮다고 하려다가 컵을 왼손으로 바꿨다.
“좀 저려. 기다리면 풀려.”
토마는 공구 상자를 들어 주었다. 렌은 상자가 가볍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르는 두 사람을 작업실 옆 복도로 데려갔다. 잠긴 제어실 문은 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외벽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통로가 있었다. 옛 설비를 운반하던 수동 점검 동선이라고 했다. 중간에 철제 덮개가 있고, 바깥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유리탑의 지상 출입구 옆으로 나왔다.
“여기는 마나 봉인을 통과하는 지름길이 아니야. 바깥 설비에 닿게 해 둔 길이지. 허가 없이 안쪽 문 열면 안 되고.”
렌은 잠긴 문과 바깥 통로를 구별해서 보았다. 길을 아는 것과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오르는 외벽의 네모난 돌기와 낮은 계단을 기억하라고 했다. 행사 때 안내판이 세워지면 평소 표지가 가릴 수 있다고 했다. 렌은 계단 위에서 유리탑 쪽을 봤다. 학생 출입구만 보았을 때와 모양이 달랐다. 안쪽 문으로 가기 위해 같은 복도를 세 번 도는 대신 바깥에서 작업 위치에 닿는 길이었다.
토마는 공책에 간단한 선을 그렸다. 제어실 안은 빈칸으로 뒀다. 렌은 그 빈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척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까 의자를 맡긴 학생과 다시 마주쳤다. 학생은 렌의 빈손과 토마의 상자를 보고 이번에는 아무 부탁도 하지 않았다. 렌은 먼저 말을 걸었다.
“의자, 누가 확인하러 온대?”
“내일. 다른 의자로 바꿔 쓰래.”
“그게 낫겠네.”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끝났다. 렌이 관리인의 조수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누구도 판정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니아는 반납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렌은 표찰이 회수품 서랍에 보관됐고, 어느 위치에서 떼어 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니아는 알겠다고 하고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연결이 잘못됐다고 한 거야?”
“아니. 그건 아직 확인해야 해.”
렌은 자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크게 발표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는 전보다 분명해졌다.
토마가 교육용 장치 이야기를 꺼냈다. 렌은 세 공급이 끊겼는지 확인하고 잔류를 본 뒤에 손잡이를 돌리는 순서를 설명했다. 니아는 중간에 질문을 하나 했고, 렌이 정확히 답하지 못한 부분은 오르에게 다시 물어볼 항목으로 남겼다. 에드는 복도를 지나가다 셋을 보고 멈췄다. 렌은 그에게도 같은 순서를 말했다.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질문에는 관리인 오르에게 배웠다고 답했다.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노트에 적었다. 더 높은 직함의 이름을 기다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손의 저림은 거의 풀렸다. 렌은 대본을 펼치려다 반납 장부를 먼저 책상 안에 넣었다. 창고의 번호와 통로, 표찰의 보관 위치가 거기 있었다. 자기가 배운 일이 물건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방 밖에서는 다음 달 공개 실습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대표 학생을 뽑는다는 말이었다. 렌은 문틈으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을 폈다 쥐었다. 엄지가 조금 뻣뻣했지만 아까처럼 감각이 둔하지는 않았다.
그는 토마에게 아직 선발 공지가 붙었느냐고 물었다.
토마는 모른다고 했다. 렌은 곧바로 복도로 나가지 않았다. 먼저 책상 위에 놓인 빈 상자를 토마의 수납칸에 넣어도 되는지 물었다.
토마가 자리를 가리켰다.
렌은 상자를 넣고 나서 문을 열었다.